타증불고(墮甑不顧) - 고전속지혜

- 홈지기 (114.♡.11.73)
- 09-01
- 458 회
- 0 건
깨뜨린 시루는 돌아보지 않는다. 한 해가 가고 다시 한 해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작년(昨年) 한 해 동안 여러 가지 일이 뜻대로 된 사람도 많겠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여러 가지 고민(苦悶)과 번뇌(煩惱)가 많은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사업(事業)에 실패한 사람, 직장(職場)을 잃은 사람, 승진(昇進)하지 못한 사람, 각종 시험(試驗)에 낙방(落榜)한 사람, 선거(選擧)에서 패배한 사람, 실연(失戀) 당한 사람, 친구(親舊)로부터 배신 당한 사람 등등,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쓰라린 경험(經驗)을 한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대체로 두 갈래로 나눌 수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서 지난 일은 다 떨쳐버리고 힘차게 새 출발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미련(未練)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지난 날의 일을 아쉬워하며 후회하거나 원망하면서, 새로운 출발을 못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미련」이란, 「칼로 베를 자르는 것」이 「련(練)」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지난 날의 일에 얽매여 세월을 보내면 결국 자신에게 유익할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야금야금 자신을 좀먹게 된다.
옛날 후한(後漢) 때 맹민(孟敏)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가난하여 공부도 못하고 젊은 시절 시루 장수를 하며 살아갔다. 어느 날 시루를 팔기 위해서 이 동네 저 동네로 지고 다니다가, 그만 잘못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러자 맹민의 사업 밑천이던 시루가 다 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의 전 재산을 날렸음은 물론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깨어진 옹기 조각을 끌어안고 울부짖으며 탄식하거나 다시 이리저리 맞추어 보거나 할 것인데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훌훌 털고 가던 길을 그냥 가버렸다.
그 날 그 시간에 마침 그 당시의 대학자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尊敬)을 받던 곽태(郭太)가 산보를 하고 있다가 가까이에서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곽태는 그 청년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여기기도 했지만, 대단하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청년을 불러 세웠다. 『여보게! 자네의 시루가 다 깨어졌다네.』 『알고 있습니다』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 청년이 대답했다. 『자네 전재산이 다 날아갔을 텐데, 왜 돌아보지도 않는가?』 『시루는 이미 깨어졌는데, 돌아보면 무엇 합니까?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해야지요』하고는 그냥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곽태는 큰 학자로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고, 또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도 많았지만, 이 청년처럼 결단력(決斷力) 있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 나이는 젊었지만, 존경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겼다. 그래서 그를 불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결단력이 있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겠다 싶어, 그에게 공부할 것을 권유(勸誘)하였다. 맹민은 곽태의 권유를 받아들여 열심히 공부하여 뒤에 큰 학자가 되었다.
지금 고배(苦杯)를 마시고 좌절(挫折) 속에 나날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과감히 과거는 떨쳐버리고 희망을 갖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앞 길을 개척(開拓)해 나가면, 반드시 지금의 실패가 자신의 성공(成功)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 墮 : 떨어뜨릴, 타. *. 甑 : 시루, 증. *. 顧 : 돌아볼, 고)
- 경남신문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