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려지기(黔驢之技) - 고전속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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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주(貴州)에 사는 나귀의 재주. 중국에 가서 각종 차량번호를 보면, 그 첫머리에 한자 한 글자가 쓰여져 있다. 이 것은 특별시와 직할시 및 각 성(省)의 별칭이다. 예를 들면, 북경시(北京市) 소속의 차량은 「경(京)」자를 붙이고, 산동성(山東省) 소속이면 「로(魯)」자를 붙인다. 「검(黔)」자는, 중국 서남부에 있는 귀주성(貴州省)의 별칭이다. 귀주에 있는 검령산(黔靈山)이 명승지로서 유명하기 때문에 「검(黔)」자를 따온 것이다.
귀주성에는 본래 나귀가 살지 않았는데, 어떤 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이 배에 나귀를 싣고 귀주로 갔다. 가서 보니까 나귀가 별 쓸 모가 없어서 그냥 산 밑에다 풀어 두었다. 거기에 살던 호랑이가 나귀를 처음 보았는데, 몸집이 크고 아주 신령(神靈)스럽게 보이었다. 수풀 속에 숨어서 나귀의 동작을 엿보기도 하고, 때로는 나와서 가까이 다가가기도 했지만, 무슨 짐승인지 힘이 얼마나 센지 도무지 짐작(斟酌)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나귀가 크게 소리내어 울었는데, 신령스럽게 생각해 왔던 호랑이는 크게 놀라 아주 멀리 도망을 갔다. 나귀가 자기를 물려는 줄 알고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뒤 호랑이가 여러 차례 왕래하면서 유심히 관찰(觀察)해 보니, 그 짐승은 특별한 능력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귀가 우는 소리도 습관이 되어 호랑이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그 짐승의 주변에 더욱더 가까이 다가가서 앞뒤로 좌우로 돌아다녀 보아도 나귀는 끝내 호랑이를 공격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나귀에게 다가가 일부러 부딪쳐 보았다. 그제서야 나귀는 자기 성질을 못 이겨 발로 호랑이를 힘껏 찼다.
공격을 당한 호랑이는 매우 기뻤다. 마음 속으로, 『신령스럽고 대단할 줄 알았는데, 정말 별 것 아니구나. 저런 덩치에 다리 힘이 이 정도 밖에 되지 않다니』라고 생각하였다. 호랑이는 단숨에 뛰어 공격하여 그 목을 물어뜯어 넘어뜨려 그 고기를 다 뜯어먹고 나서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호랑이는 본래 더없이 날랜 짐승인데도, 처음에 겉으로 나귀의 덩치만을 보고서 겁을 많이 먹었다. 그러나 한 번 공격을 당해보고 나서 그 힘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이내 나귀를 잡아먹어 버렸다.
능력은 없으면서도 얼굴이나 몸매가 그럴듯하게 생긴 때문에, 혹은 학벌이나 연줄 덕으로 적당히 남의 눈을 속이면서 실제 이상의 우대(優待)를 받는 사람은 언젠가는 그 실상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러니 자기의 실질적인 능력을 키우는 데 힘을 쏟아야 하겠고, 우리 사회도 능력 있는 사람이 대우받는 사회가 되어야 하겠다.
앞으로 곧 총선이 다가오는데, 국민 각자가 많은 후보자들 가운데서 유능한 인재를 잘 알아서 선발하도록 해야겠다. 그럴듯한 얼굴 표정이나 말재주에 넘어가 선출하다 보면, 능력이 형편 없는 사람이 뽑힐 수가 있다.
기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이나 조직사회를 통솔하는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사람의 능력을 잘 알아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고 외친 대통령이 있었다. 그 분도 사람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능력 있는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없었기에, 인사가 올바로 될 수 없었던 것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사람을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개혁(改革)이라는 미명하에, 능력 있는 사람, 경험이 풍부한 사람,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들을 나이만을 이유로 무차별로 밀어내어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여론재판식의 사람 평가(評價)는 사실 더 큰 문제를 야기(惹起)할 수 있다.
[*. 黔 : 검을, 검. *. 驢 : 나귀, 려. *. 之 : ...의, 지. *. 技 : 재주, 기]
- 경남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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