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도명(欺世盜名) - 고전속지혜

- 홈지기 (114.♡.11.73)
- 09-01
- 489 회
- 0 건
세상을 속이고 명예를 훔친다. 동물들 사이에도 다 엄격한 위계질서(位階秩序)가 있다. 예를 들면 사슴은 스라소니를 두려워하고,스라소니는 호랑이를 두려워한다. 호랑이는 겁내는 짐승이 없는 것 같지만,사실 호랑이는 말곰을 아주 두려워한다. 말곰이라는 것은 큰 곰이라고도 하는데,곰의 종류에 속하면서 아주 날래고 사납다. 털을 뒤집어쓰고 사람처럼 서서 다른 짐승들을 공격하는데,아주 힘이 세서 호랑이도 꼼짝 못하고 당한다. 호랑이가 꼼작 못하니 다른 짐승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짐승은 때로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
중국 초(楚)나라의 남쪽 지방에 대로 피리를 만들어 온갖 짐승들의 소리를 아주 똑 같이 내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 소리가 실제 짐승의 소리와 너무나 흡사하여,짐승들도 완전히 자기들의 소리로 알 정도였다.
이 사람은 활과 화살과 피리를 들고 혼자 산 속으로 들어가,피리로 사슴의 소리를 내면,산 속에 있는 사슴들은 자기의 친구가 부르는 줄 알고 곧장 모여드는데,그러면 활로 쏘아 잡아 살아갔다.
그런데 매일 사슴만 모여들면 아무 일이 없었겠는데,어느 날은 그 가까이에서 배가 고파 먹이를 찾고 있던 스라소니가 사슴 소리를 들었다. 스라소니는 반가워서 소리 나는 곳으로 재빨리 찾아가 보았더니,사슴은 보이지 않고 피리 부는 사람만 있었다. 그래서 스라소니는 잘 됐다 싶어 그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겁이 났으므로,호랑이 소리를 내서 그 스라소니를 놀라게 하자,스라소니는 도망가고 호랑이가 나타났다. 호랑이가 온 것을 보고 더욱 겁이 난 그 사람은 호랑이를 이기는 말곰 소리를 냈다. 말곰은 자기의 친구가 자기를 부르는 줄 알고 달려갔다. 그러자 호랑이는 도망가고 말곰이 나타났다. 말곰이 가까이 가서 보니,자기 친구는 없고 사람만 서 있었다. 그 말곰은 그 사람을 나꿔 채서 잡아 먹어버렸다.
우리는 이 피리 잘 부는 사람이 한 짓을 보고 비웃을 수도 있지만,실제로 자신의 처세방식(處世方式)이 이와 유사한 경우가 적지 않다. 깊이 있는 전문성(專門性)을 갖추지 못한 채 적당히 손쉽게 남들의 눈을 속이면서 살아가다가는 언젠가는 낭패(狼狽)를 당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한두 번은 적당히 남의 눈을 속일 수는 있지만,계속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적당하게 세상을 속이면서 자기가 마땅히 누려할 그 이상의 명예를 누리는 경우를 두고, `기세도명(欺世盜名)`한다고 한다. “세상을 속이고 이름을 도둑질한다”는 뜻이다.
조선시대(朝鮮時代)에는 유학(儒學) 가운데서도 성리학(性理學)이 성행했는데,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에 이르러 그 수준이 절정(絶頂)에 이르렀다. 그러나 성리학은 이론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 하면 공허(空虛)한 이론 논쟁으로 흐르기 쉽다.조선 중기 이후로 많은 학자들이 성리학에 대해서 논하기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었는데,남명(南冥) 조식(曺植)선생은 이를 두고 `세상을 속이고 이름을 도둑질하는 짓`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지식인들은 노력하여 자기의 실력을 높이기에 노력해야지,노력 없이 사이비(似而非) 지식으로 세상을 속이려 해서는 안되겠다.[*. 欺 : 속일, 기. *. 盜 : 도둑질할, 도. *. 名 : 이름, 명]
- 경남신문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