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의 장난 - 호기심천국

- 홈지기 (114.♡.11.73)
- 08-31
- 385 회
- 0 건
나이를 먹어가면 머리카락 속이 대통처럼 텅텅 비고 그 틈에는 공기가 그득 들어찬다. 문제는 공기(空氣)다! 정년 한 해를 남겨둔 내 모습이 그리 추하지 않아 보인다고들 한다. 낯짝엔 그래도 기름기가 배어있어 아직은 주름살 하나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위로 올라가면 말이 아니다. 머리털이 새어 백새가 된 지 오래다.
사실 어느 털이나 가운데는 공기가 조금씩 들어있다. 살 밑에서 털이 만들어져 자라는 과정을 보면 멜라닌(melanin)이라는 검은 색소가 털뿌리(毛根)에 녹아들고 공기도 조금씩 묻어 들어간다. 그러나 중병을 앓거나 영양상태가 아주 좋지 못할 경우 또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색소가 제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공기는 더 많이 들어찬다. 물론 유전이 가장 큰 몫을 한다. 머리터럭 하나에도 이 놈이 묻어나온다. 그래서 대물림하는 씨(DNA)는 절대로 못 속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머리털이 흰 것은 멜라닌이 적은 것도 문제지만 그 속을 채우고 있는 공기(air)가 주범이다. 그 속의 공기가 햇살을 받아 빛을 산란(散亂, scattering)시키기에 털이 희게 보인다. 뿐만 아니라 눈송이가 흰 것은 송이송이 틈새에 든 공기의 빛 산란 때문이요, 흰 꽃의 꽃잎이 희게 보이는 것도 세포 틈을 채우고 있는 공기 때문이다.
공기 이야기를 좀더 해보자. 자기 손가락을 꺾어보면 ‘딱!’ 하고 소리가 난다. 이건 또 왜 그런가. 손마디는 다름아닌 관절이다. 무릎, 팔, 목 등 구부리고 펴고 틀 수 있는 뼈마디가 모두 관절이다. 관절의 뼈 끝에는 말랑말랑한 연골(물렁뼈)이 붙어있고 연골 사이에는 액체가 들어있어 움직임을 원활케 한다.
그런데 역시 나이가 들면 그 사이에 공기가 들어차게 된다. 손가락을 비틀어 꺾으면 두 뼈 사이에 들어있던 공기가 눌려 밖으로 나가면서 ‘딱!’ 하고 소리를 낸다. 일종의 마찰음이다. 물리학에서는 ‘마찰적 파동(음파)’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소리가 난 손가락뼈는 곧바로 다시 비틀면 소리가 나지 않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공기가 뼈마디 사이로 들어간 후) 다시 소리를 낸다. 세 살배기 어린이의 손발가락을 꺾어보면 절대로 소리가 나지 않는다.
‘우리 몸과 공기와의 관계’를 더 보자. 늙으면 자주 허기를 느낀다. 배가 고프다 싶으면 뱃속에서는 창피하게도 ‘꼬르르 꼴꼴’ 소리가 난다. 이건 또 왜 그럴까. 얼마 전만 해도 방구들에 파이프를 깔아서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 방을 덥혔다. 그런데 가끔씩 ‘에어(air)’를 뽑아줘야 물이 잘 돈다. 그때도 방바닥에서 ‘꾸르르 꿀꿀’ 물 흐르는 소리가 나지 않던가.
맞다! 우리 뱃속에서 나는 소리도 보일러의 물소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런데 뱃소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위에서 소장(십이지장)으로 음식이 내려갈 때 내는 소리이고, 또 하나는 대장이 꿈틀거리면서 내는 소리이다. 큰 창자에 내려온 음식 찌꺼기는 물이 죄다 흡수되고 제법 굳은 대변덩이 모양을 갖춘다. 대장에는 500가지가 넘는 세균(미생물)들이 소화가 다 끝난 것을 분해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것들이 분해할 때 여러 종류의 가스(공기)가 나오니 이것이 모여서 방귀가 된다. 이 가스가 변 덩어리 사이에 고여(뭉쳐) 부풀어나고, 그 공기뭉치가 똥덩어리에 눌려 아래로 빠져나갈 때 꼬르륵 소리를 낸다. 그것 또한 마찰음이다.
대처 늙음이란 무엇이람? 머리카락에 공기 들고, 뼈마디에 바람 스미고, 대장에 가스 차는 것이 늙어빠짐이다. 그러나 동안학모(童顔鶴毛), 어린이 얼굴에 학 머리를 가진 모습이 바로 나일 터. 주름투성이와 흰털뭉치는 세월이 준 훈장이다! 서러워할 일이 아니다. 세월의 풍화작용을 어쩌겠는가. 늙음을 순순히, 그리고 담담히 받아들일 것이다.
- 주간조선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