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는 왜 가로로 잘 찢길까? - 호기심천국

- 홈지기 (114.♡.11.73)
- 08-31
- 379 회
- 0 건
오늘 밤에도 저 동해안 끄트머리 수평선에는 오징어 배들이 떼지어 몰려들었을 것이다. 하여 대낮같이 밝은 불을 켜놓고 있다. 집어등(集魚燈)의 불빛을 어화(漁火)라고 하는데, 좀 낭만적으로 ‘고기잡이의 꽃(漁花)’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휘황찬란한 광경에 눈을 떼기 아쉬운 여름밤 불바다! 밤바다도 이렇게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하지만 숨이 턱에 닿도록 낚싯줄 끌어올리는 어부는 죽을 맛이다. 여름밤 가로등에 달려드는 부나비처럼 오징어도 밝은 불빛 쪽으로 몰려온다. 실은 빛이 좋아서가 아니다. 빛을 보고 플랑크톤이 수면으로 떠오르고, 그걸 먹겠다고 새우와 작은 물고기가 따르고, 따라서 오징어가 그 놈들을 잡아먹으러 모여드는 것이다.
오징어를 오적어(烏賊魚), 묵어(墨魚)라고 불러왔는데, 이 두 말을 풀어보면 ‘도적을 만나면 검은 먹물을 내뿜는다’는 의미가 들어있는 듯하다. 여기서 도적이란 다름아닌 자기보다 큰 물고기, 즉 오징어의 천적을 말하는 것이다. 큰 고기가 달려들면 도망을 가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먹물을 확 뿜어버리고 내뺀다. 따라오던 고기는 먹물에 눈이 가려서 먹이를 못 잡는 것이 아니다. 냄새를 맡으면서 먹이감을 찾느라 빙글빙글 도는 사이에 오징어는 멀찌감치 도망을 간다. 오징어의 생존전략이 어떤가. 절대로 비겁하거나 치졸한 놈이라 탓하지 말라!
요즘은 교통이 좋아서 수조에서 살아 움직이는 오징어를 만날 수가 있다. 움직일 때는 앞쪽의 지느러미와 뒤의 다리를 살랑거리면서 몸의 균형을 조절하지만, 빨리 달릴 때는 입 아래에 있는 깔때기로 물을 뿜어내는 분사운동(噴射運動)으로 잽싸게 이동한다. 오징어, 낙지, 문어 등을 묶어서 연체동물(軟體動物)의 두족류(頭足類)라 부른다. 머리에 다리가 붙어있는 괴이한 꼴을 하는 동물이다.
머리에 몸통이, 그 아래에 다리가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오징어는 다리가 10개인 십각목(十脚目)이다. 우리는 ‘다리(脚)’라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팔(arm)’이라는 의미로 십완목(十腕目)이라 번역하기도 한다. 오징어 다리가 발이냐 팔이냐? 문화의 차이란 무서운 것인가 보다. 10개 중 2개의 긴 다리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운동을 위한 것이 아니라 먹이 감을 잡거나 상대를 움켜잡아 정자덩어리를 넣어주는 교미기(交尾器) 역할을 한다.
그건 그렇다 치고 말린 오징어의 몸통을 찢어보면 세로로는 잘 찢기지 않고 가로로만 찢긴다. 왜 그런가? 둥글게 가로로 발달한 환상근(環狀筋)이 길게 세로로 뻗은 근육인 종주근(縱走筋)보다 90% 이상 발달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오징어는 환상근이 그렇게 발달하였을까. 빨리 달리기 위해서는 몸통을 재빨리 오그려서 몸 속의 물을 깔때기로 뿜어내야 한다고 했다. 빨리 움직여서 잡혀 먹히지 않으려면 결국 몸통을 오므리는 근육인 환상근육이 발달하지 않을 수 없다. 근육도 많이 쓰면 쓸수록 발달하는 것. 물론 오징어의 근육은 콜라겐(collagen) 단백질이 주를 이룬다. 오징어가 질긴 이유가 바로 이 콜라겐에 있다.
마른 오징어를 살 때는 발이 몇 개인지 챙기는 것 외에 몸통에 달랑, 동그란 것이 하나 붙어있으니 그것도 따져봐야 한다. 눈이 아니고 입이다. 매부리를 닮은 입은 예리하여 살아있을 적에 오징어에 물리면 손가락이 잘려져 나간다. 참고로 오징어 눈은 두 개로 말리기 시작할 때 내장과 함께 다 떼어버린다.
오늘 따라 우리들 마음의 고향, 푸르고 끝 간 데 없는 망망대해, 오징어가 뛰노는 저 푸른 바다가 너무나 그립다. 왠지 강릉의 경포해수욕장을 달려 가보고 싶다. 그곳에 누가 날 기다리고 있기에?!
- 주간조선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