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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딩케이크 - 음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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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시작된 웨딩케이크. '신사의 나라' 영국 하면 동시에 연상되는 두 가지가 있다.매너와 형식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그 점은 중절모자를 쓰고 우산을 든 정장 차림의 영국 신사에게서가 아니라,오늘날 우리 생활에 매우 익숙해진 케이크를 통해서 여실히 엿볼 수 있다.생일.환갑.진갑.약혼.결혼.집들이용 등 용도에 따라 수많은 종류로 나뉘어 있는 케이크는 매너와 형식을 중요시하는 영국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케이크의 유래는 기원전 100년께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 간다. 지금의 케이크가 다양한 맛을 선보이는 것이 주목적인 데 비해,로마시대의 케이크는 결혼식 때 신부에게 던져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당시의 웨딩케이크는 부와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신부에게 선물했던 음식으로 다산을 상징하는 징표의 하나였다.토목 기술이 상당했던 로마인들은 과자 만드는 기술도 무척 뛰어났는데 밀가루를 이용해 작고 달콤한 케이크를 만들어 결혼식에 이용한 것이었다.

로마시대에 케이크는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뜻이 있었기에,당시의 신부들은 신랑과 함께 결혼식 하객들이 마구 던져주는 케이크를 볼썽사납게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자기들의 일생에서 가장 예쁘고 우아하게 보여야 하는 날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중세에 이르자 로마의 볼썽사나운 관습이 경건함을 중시했던 시대 정신과 맞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중세에는 케이크 대신 케이크의 재료인 밀을 신부에게 던져주며 부와 다산의 풍요를 기원하게 되었다.

17세기 중엽 영국에서는 케이크 대신 구운 과자를 2~3m 높이로 쌓아 올렸는데,과자 무더기가 높을수록 복을 많이 받는다고 여겼으며,신랑과 신부는 과자를 먹는 대신 그 '과자 산(山)'에 올라가 키스를 해야 했다.

1660년 프랑스의 한 요리사가 영국 런던에 갔다가 우연히 결혼식 구경을 하게 되었는데,무너지는 과자 산을 기어오르는 신랑과 신부의 모습이 측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그리하여 그는 과자로 산을 만들기보다는 처음부터 과자를 여러 층으로 쌓아 놓고 그 표면에 설탕을 발라 딱딱하게 만든 다음 호화스러운 장식을 하는 케이크를 만들었다.

17세기 중엽 영국에서는 이러한 형태의 호화판 케이크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나 17세기가 끝날 무렵에 이르러서는 전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이 호화판 케이크가 매너와 형식을 중요시했던 영국 풍습과 꼭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이후 케이크는 영국인들의 결혼식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 부산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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