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 - 혈액의 세관검색대 - 인체이야기

-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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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장은 인체의 김포공항 검색대, 혈액 정수기라 할 만하다. 혈관을 따라 온몸을 돌던 피가 들어오면 늙은 적혈구와 혈액 내의 불필요한 물질들을 비장이 콕 찝어 걸러내기 때문이다.
자기 손바닥 만한 크기(길이 12㎝, 폭7㎝)로 납작하게 생긴 비장의 다른 이름은 지라. 흔히 지라와 헛갈리는 이자는 췌장의 순우리말이다. 비장과 췌장은 위 뒤쪽에 나란히 붙어 있지만 기능상 연관은 없다. 비장의 무게는 120~170g 면 정상으로 친다.
비장은 외부 피막 안에 가는 그물이 촘촘히 쳐 있는 구조로, 표면에는 지라문이라는 혈관 출입구가 깊게 파여 있다. 내부는 항상 혈액으로 가득차 있어 떼어내서 보면 벌건 피덩어리처럼 보인다. 조직을 떼내려고 바늘로 찔러다간 쉽게 파열되어 피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탓에, 림프종 등이 의심돼도 조직검사를 꺼린다. 그 대신 골수검사를 하거나 바로 절제해 내는 경우가 많다. 11번과 12번 갈비뼈가 보호해 주긴 하나, 왼쪽 옆구리를 다치면 비장이 터져 복강 출혈이 생기는 경우도 흔하다.
비장은 내부의 그물망을 이용해 노후한 적혈구 등을 체로 치듯 걸러낸 뒤 제거한다. 탄력성이 떨어진 늙은 적혈구는 비장의 촘촘한 그물망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남아 있다가, 대식세포에게 잡아먹힌다. 또, 비장 내부는 혈액의 흐름이 아주 느려서 산소와 포도당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므로, 노후한 적혈구는 이같은 특수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탄력성을 잃어 파괴된다. 이런 「불순물 제거 과정」이 살구씨 뽑아내듯 정확하다고 해 의학용어로는 피팅(pitting)이라고 한다.
성인은 하루 350ℓ의 혈액이 비장을 통과한다. 적혈구는 120일의 생존 기간 중 2일 정도 비장에 체류하는 셈인데, 이 과정에서 매일 20㎖ 정도가 제거된다. 비장은 항체를 생산하는 면역 기능도 담당하며, 태아 때는 피를 만들어 내는 기능도 한다. 태어나서는 비장의 조혈 작용은 중단된다.
지라는 여러 원인에 의해 정상보다 커질 수 있다. 이런 상태를 비장종대라 하는데, 가장 흔한 원인은 간경화이다. 간이 딱딱해져 피를 원활히 내보내지 못하면 비장까지 혈액이 고이면서 비정상적으로 커진다. 한남대교에서 교통사고 나면 남산1호터널까지 밀리는 상태와 마찬가지인 셈.
위를 모두 절제하는 위암 수술시 환자들은 수술 전 『상황에 따라 비장까지 떼어낼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게 된다. 비장이 집도의의 시야를 가려 원활한 수술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암덩어리가 비장 쪽으로 향하고 있으면 향후 번질 가능성에 대비해 비장을 미리 절제하기도 한다.
비장을 떼어내도 혈액 정화 작용 등 비장의 기능은 다른 림프구와 간에서 대신하므로, 대부분 사는 데는 별다른 지장이 없다.
- 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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