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이야기 - 약초이야기

-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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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상추값이 많이 올랐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최근의 수해(水害)로 인해 채소류들이 품귀현상을 빚어서 갈비집에서도 고기보다 상추 값이 더 비싸다는 우스개 소리도 있다고 한다.
고기를 구워먹는 음식점에서 만약 상추가 떨어진다면 음식점에서 이보다 더 곤란한 일은 없을 것이다. 서양사람들은 상추를 싸서 고기를 먹는 습관은 없지만, 고기를 먹을 때는 야채를 꼭 곁들여서 먹는다.
고기에 야채를 함께 먹음으로서 부족해지기 쉬운 무기질과 비타민을 보충해주며, 청혈작용(淸血作用)도 있고, 아울러 화식(火食)을 하면서 생식(生食)을 할 수 있는 신선한 야채를 곁들이는 것은 좋은 지혜일 것이다. 특히 상추는 무기질과 비타민의 함량이 높을 뿐만 아니라, 철분이 많아 빈혈에도 좋은 식품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생겨난 음식습관에는 수많은 음식궁합이 들어가 있고, 경험에서 우러나는 수많은 지혜가 들어가 있다. 우리는 보통 시금치를 데쳐서 먹는다. 날로 먹는 채소도 많건만 굳이 시금치만을 데쳐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금치를 날로 먹게 되면, 시금치 성분 중에 있는 수산(蓚酸, oxalic acid)이 체내의 칼슘과 결합하여 수산칼슘으로 변화되어서 신장과 요도 등에 결석을 생기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시금치를 살짝 데치면, 수산(蓚酸)이 파괴되어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처럼 오랜 음식 습관은 경험에서 배어나오는 지혜가 들어있기 마련이다.
상추는 영어로 레테스(lettuce)라고 하는데, 이 이름은 상추의 학명((Lactuca sativa)과 마찬가지로 젖을 의미하는 라틴어의 lac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 라틴어의 'lac'은 중국을 거쳐서 한문으로 낙(酪)으로 바뀌어 낙농업(酪農業) 등에 흔하게 쓰이는 말이다. 상추에 젖을 의미하는 어원이 있는 것은 상추를 잘랐을 때, 젖같은 액체가 흘러나오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상추는 유럽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에서 기원했던 식물이라고 하며, 아시아를 따라서 중국으로 왔고, 이것이 동아시아에 전해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보면, 상추를 우리말로 "부루"라고 표기하였고 한문으로 와거( )라고 하였다.
그리고 와거( )와 함께 고거(苦 )와 고채(苦菜)를 언급하였는데, 이는 들상추와 고들빼기를 말한다. 필자는 식물분류학적인 지식도 없고, 여기에 대해 언급한 문헌도 없지만, 고려시대 이전부터 상추쌈을 먹어왔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는 것으로 볼 때, 예전에 우리가 먹었던 상추는 유럽쪽에서 온 것이 아니라 원래 이 땅에서 자라던 토종의 상추와 들상추를 말했던 것 같다.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먹고 있는 상추는 토종의 상추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1890년경에 일본에서 잎상추가 들어와서 재배되었으며, 그후 주한 미군들의 군납을 위해서 1960년경부터 수입종인 결구상추(레터스)가 들어와서 오늘날 대부분의 상추가 서양상추라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또한 상추에는 Lactucerin, Lactucin, Lactucicacid 과 같은 알칼로이드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는 아편(Opium)과 같이 최면, 진통의 효과가 있어 상추를 많이 먹게 되면 졸리게 된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또 상추와 고들빼기를 가르켜 "이들은 모두 잠이 오지않게 하며, (皆令不睡) 오래 먹으면 잠이 줄어든다(久食之少睡)"라고 언급하였는데, 서양상추와 전통적인 상추가 같은지의 여부와 함께 상추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작용이 있어서 두루 몸을 이롭게 하면서 가볍게 해주고, 꾸벅꾸벅 조는 상태를 경쾌하게 해준다는 의미는 아닌지 생각이 든다.
중국에서는 한때 상추를 값비싸게 취급해서 '천금채(千金菜)'라고 불렀다는 기록이 있는데, 수해(水害)로 인해 상추값이 비싼 요즘에, 불의의 재난을 당한 수재민을 십시일반(十匙一飯)으로 도와서 고통받는 이들의 시름을 빨리 덜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전북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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