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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무좀군단' 한여름 대공습 … - 질환과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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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따뜻하고 축축한 살 집도 구했고, 도처에 맛있는 먹거리가 널려 있어 저는 요즘 기분이 무척 좋습니다. 겨우내 배가 고파 움추리고 있었는데, 이젠 제 팔과 다리에도 통통하게 살이 붙어, 제법 인물이 난답니다. 백선균(무좀균)으로 곰팡이의 일종이죠. 우리 백선균은 40여종이 넘으며, 생김새와 성질도 다 다릅니다. 대부분 사람 발과 발가락 사이를 좋아하지만, 어떤 종족은 샅(사타구니)이나 가슴안팎을 좋아하고, 또 어떤 종족은 털을 유난히 좋아합니다. 저마다 개성이 있지요. 그러나 흑인과 백인이 같은 사람이듯, 우리도 본시 한 종(種)이기 때문에, 기본 성질은 모두 다 비슷하답니다.

우리는 사람이나 동물의 피부 맨 바깥쪽인 각질층에 집을 짓고 삽니다. 진피라고 부르는 피부 깊숙한 곳까지 침범하지 못하죠. 때문에 사람을 "약간" 괴롭히지만, 다른 세균처럼 심각한 감염증을 일으켜 생명을 위협하는 일은 없습니다.주식(主食)은 사람의 때 입니다. 사람의 표피는 2개월만에 한번씩 벗겨져서 때가 되는데, 그것 만큼 맛있는 음식은 없답니다. 요즘처럼 따뜻해서 발에 땀이 많이 나는 계절에, 양말로 감싸고 그것도 모자라 바람이 안통하는 가죽 구두로 덮어 씌워 놓았으니, 사람의 발은 우리에게 최상의 서식처인 셈이죠. 사실 우리는 춥고 건조한 곳을 싫어한답니다. 따라서 겨울에는 몸을 공처럼 동그랗게 말아 에너지 소비를 최대한 줄인 상태에서 "좋은 시절"이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사람의 발에서도 대부분 살지 못하고 쫓겨 나죠. 이때의 우리를 "포자"라 부릅니다. 그러나 봄이 되고 여름이 와 축축하고 따뜻한 계절이 돌아오면 우리는 기지개를 펴고 실처럼 자라며 통통해집니다. 때로는 예쁜 꽃 모양으로 변하기도 한답니다. "균사"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세력이 커지면 발가락 사이가 갈라지고, 피부에 물집이 잡히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를 무척 싫어해서 죽이려고 안달입니다. 그러나 가소로운 일이죠. 우리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고, "불사조"처럼 쉽게 죽지도 않는, 그야말로 지구상에서 가장 강인하고 우수한 종입니다. 사람들이 최신 무기(약)로 우리를 죽이려 하지만, 우리는 좀처럼 죽지 않습니다. 우린 세(勢)가 불리하면 공기중을 떠 다니거나, 땅 속에 숨어 있거나,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 몸에 붙어 살다 틈만 보이면 공격해서 다시 사람의 피부를 점령하기 때문에, 승리는 항상 우리의 편이지요. 따라서 우린 전사(戰史)에 일보 후퇴는 있을지언정, 패배는 없답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도 약점이 있습니다. 무좀약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무기와 춥고 건조한 환경 앞에선 우리가 맥을 못 춥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불패(不敗)인 이유는 사람들의 공격이 허술하고 도무지 원칙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군사기밀이지만, 무좀약으로 6주 정도 꾸준히 우리를 공격하고, 발에 땀이 나지 않도록 수시로 씻고 깨끗이 말린다면 우리는 백전백패입니다. 그러나 대분분의 사람들이 가렵거나 발가락 틈새가 갈라질때만 무좀약을 쓰다가 곧 중단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때만 잠깐 숨죽이고 있으면 됩니다. 무좀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게으르거나, 인내심이 없거나, 너무 바뻐서 발 관리를 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조금만 참고 견디면, 제풀에 지쳐 버립니다. 그때 무혈입성(無血入城)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조상 대대로 어떤 사람이 게으르고, 발 관리를 엉망으로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그 사람만 집중적으로 공격한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년에 있던 무좀균이 겨우내 숨어있다 여름이 되면서 재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게 아닙니다. 작년처럼 올해도 발을 혹사하고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우리에게 점령 당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일 수록 "무좀은 당할 수 없다"고 지레 꽁지를 내리는데, 우리 입장에선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제가 너무 많은 군사기밀을 털어 놓았나요. 그러나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사람들의 패배는 모르기 때문에 아니라, 실천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승리는 늘 우리에게 있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조선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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